김세운 기자

박도산

사람들 앞에서 연주하는 박도산ⓒ박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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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의 신' 니진스키의 아내이자 발레리나인 로몰라 니진스키 풀스키는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오는 선상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 저서는 전했다. "우리들의 마지막 밤. 아르헨티나의 진짜 땅고를 들으면서 우리는 놀랐다. 보름달의 푸른 빛깔, 그것이 부에노스아이레스였다" 진짜 탱고를 듣는 순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진가가 보였다는 소리 일 것이다. 그만큼 탱고와 부에노스아이레스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하지만 이제 '탱고의 영혼'이라고 불리는 반도네온을 논할 차례다. 반도네온이 없는 탱고는 앙꼬없는 잉어빵이며 영혼 없는 껍데이기 때문이다. 진짜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보기 위해서 탱고를 봐야하듯, 탱고를 보기 위해서는 반도네온을 알아야 한다.

반도네온은 탱고의 핵심이자 정수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초기 탱고는 반도네온을 제외한 기타, 플루트, 바이올린 등으로 연주됐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반도네온은 탱고를 연주하는데 가장 핵심적인 악기로 자리잡았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탱고춤은 반도네온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생겨났다고 할 정도다. 이 낯선 악기는 네모난 주름상자로 이뤄졌으며 양 옆에 버튼을 가지고 있다. "지금은 이 녀석 밖에 안 보인다"며 애착을 보이는 반도네온 수리공 박도산 씨를 만났다. 반도네온과 그 녀석을 치료해주는 수리공이라는 직업은 국내에서 여전히 희소하기에 그와의 만남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그는 아르헨티나에서 귀국한지 한 달여 밖에 안됐다. 반도네온 수리를 배우기 위해 탱고의 본고장인 부에노스아이레스로 훌쩍 떠났지만 막상 도착한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반도네온 수리를 배우기 어려웠다. 아르헨티나인에게 반도네온 수리는 밥벌이었기에 기술을 잘 가르쳐 주지 않았다. 아르헨티나에 머무는 2년은 순전히 독학과 경험으로 반도네온을 수리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한국과 달리 아르헨티나는 수리 조율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게 업이다. 그들은 자기 기술을 잘 가르쳐 주지 않는다. 자기 밥벌이이기 때문이다. 다 자기만의 노하우가 있고 그래서 작업 모습도 잘 안보여준다. 치사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반도네온을 배우러 아르헨티나를 갔지만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으니 처음엔 막상 할 것이 없었다. 그러다가 페이스북을 통해서 반도네온을 수리하고 조율하는 젊은 친구들을 만났다. 도움이 많이 됐다. 지금은 반도네온 수리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도움을 준다. 한국에 귀국한지 한달여 됐는데 현재까지 2명 정도 고쳐줬다. 한 명은 예약을 받아논 수순이다. 아직 많이 고쳐준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반도네온을 고치는 일을 한다."

반도네온을 수리하는 일은 조금씩 진척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처음엔 "이 곳을 고칠 때 이것을 떼야 하나 안 떼야 하나"에 대한 불확신이 컸다. 하지만 수리를 직접 경험할수록 확신이 커졌다. 수리에 관한한 디테일한 부분을 섭렵하게 된 것이다. 현재 그는 반도네온 연주가인 고상지 씨에게 레슨을 받고 있는데, 고상지 씨의 고장난 반도네온을 살려내기도 했다. 80년정도 됐기 때문에 소리가 나지 않을 정도였지만 그의 손을 탄 뒤 고상지 씨의 반도네온은 소리를 낼 수 있게 됐다. 또 그가 모든 음을 새롭게 조율해서 판 반도네온은 일본 탱고음악에 붐을 일으킨 거장 료타 코마츠로부터 칭찬을 듣기도 했다.

박도산

2011년 부에노스아이레스 땅고 페스티발ⓒ박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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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네온 많진 않지만 한국에서 늘어날 것

반도네온 수리를 배우기 위해 아르헨티나로 떠났지만, 처음부터 떠날 생각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시작은 2004년 탱고춤부터였다. 큰 형의 영향으로 춤을 추기 시작했고 이것은 탱고음악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탱고 음악을 많이 듣다 보니 탱고 음악의 핵심 정수라고 할 수 있는 반도네온에 관심사가 이르렀다. 그 때가 2009년이었다.

" 그러니까 반도네온을 내가 처음 만진 것은 2009년 가을 즈음이었다. 당시 우리 나라 사이트에서는 배울 사이트가 없었다. 외국 사이트에서 정보를 보고 동영상 하는 법을 배웠다. 그런데 내가 기대하고 생각했던 반도네온 소리가 안났다. 달랐다. 소리를 나는데 뭔가 안 좋은 소리가 나고 바람도 새더라. '아 어떡하지' 싶더라. 그래서 미친 척하고 이것들의 내부를 뜯어보기 시작했다. 버리는 셈치고 뜯어보기 시작했는데, 그렇게 복잡하지 않았다. 막상 열어보니까 문제점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바로잡았다. 당시 내 반도네온의 문제는 주름 상자에 구멍이 많아서 바람이 샜던 것이다. 그래서 아르헨티나에서 재료를 받고 교체했다. 그러다 보니 연주보다는 수리 쪽에 재미를 느끼게 됐다"

당시 그는 교보생명 경리팀에 있었다. 또 가톨릭 대학교 인천 성모병원 경리팀에도 있었다. 그러다가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왕 가는 것 반도네온 수리를 제대로 배울 수 있는 본거지 아르헨티나로 떠나자는 생각에 이르렀다.

"회사에서 한 7년 정도 일했다. 일단 회사 그만두고 그다음엔 생각 안하기로 했다. 아르헨티나로 가는 것은 개인적인 어떤 욕심일 수도 있고, 배우고 싶다는 욕심일 수도 있다. 당시 반도네온을 인터넷이 검색도 하고 카페에 글도 남기면서 관련 이물들을 몇 명 알게됐다. 반도네온 관심이 있고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한국에 많았다. 또 반도네온에 문제가 있는 사람도 있고. 그래서 당시 반도네온이 많지는 않지만 늘긴 늘것이고, 그러면 고치는 사람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반도네온 없는 탱고는 상상할 수 없다. 탱고의 심장은 죽을 것이며 영혼은 빠져나갈 것이다. 그리고 약동하는 탱고의 음율은 심심해질 것이다. 어쩌면 그가 다른 악기가 아닌 반도네온을 수리하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 관심은 오로지 반도네온이다. 반도네온이 매력적인 이유는 어려워서 좋다. 그래서 재밌다. 탱고에 반도네온이 없다면 음악이 심심해질 것이다. 탱고에서 악센트를 주는 부분이 있다. '빰빰빰빰'하는 부분인데 이게 빠진 탱고는 진짜 심심할 거이다. 이런 부분을 넣을 수 있는 것은 피아노도, 바이올린도 아니다. 오직 반노네온만 할 수 있다"

아르헨티나는 이제 반도네온을 공장에서 만들지 않는다고 했다. 탱고의 황금기 1930~40년대에 비해 수요가 줄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도네온을 새롭게 생사하는 일보다 원래 있는 반도네온을 수리하는 일이 더 많다고 전해진다. 반도네온 수리공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한국에서 반도네온을 수리하는 것이 아직은 업으로써 정착하지 않았다. 하지만 탱고의 아름다움을 믿는 그는 '탱고의 영혼' 반도네온을 수리하는 일을 계속해 나갈 예정이다.

박도산

고상지 씨 반도네온 수리 작업 중, 위 왼쪽-lustre 전 varilla 선명화 작업, 위 오른쪽-lustre 완료 후 모습, 아래-수리와 조율 완료 후 모습ⓒ박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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