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한·일월드컵 조추첨 행사 당시 진행을 맡았던 미셸 장 루피넨 FIFA(국제축구연맹) 사무총장은 F조 마지막 포트에서 나이지리아를 꺼내든 순간 '예스, 잇츠 나이지리아!(Yes, It's Nigeria)'를 외쳤다. 순간 행사장 곳곳에서는 탄식이 쏟아졌다. 21세기 첫 월드컵에서 첫 '죽음의 조'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잉글랜드, 아르헨티나, 스웨덴, 나이지리아 등 쉽지 않은 팀들이 한 조에 묶이는 순간이었다.
월드컵마다 꼭 하나씩 탄생하는 것이 바로 '죽음의 조'다. 실력이 만만치 않은 팀이 적어도 3개 팀 이상 묶여 긴장감 넘치는 대진이 형성되면 '죽음의 조'가 성립된다. 7일 오전(한국시간) 열릴 브라질월드컵 조추첨에서는 어느 팀이 '죽음의 조'에 들어갈 지 관심이 모아진다. 특히 브라질월드컵은 FIFA 랭킹 최하위가 59위(호주)일 정도로 이전처럼 최약체, 다크호스 등이 거의 없다. 어떻게만 묶이면 죽음의 조가 대거 탄생할 가능성이 높다.
2002년 한·일월드컵 F조(잉글랜드, 아르헨티나, 스웨덴, 나이지리아)를 비롯해 역대 월드컵에서 죽음의 조는 잇따라 탄생해왔다. 지난 1998년 프랑스월드컵 때는 스페인, 나이지리아, 파라과이, 불가리아가 한 조에 속해 당시 역대 최악의 조로 꼽혔다. 이때 희생양이 됐던 팀은 스페인과 불가리아였다. 스페인은 당시 8강 이상을 넘볼 수 있는 팀이었고, 불가리아는 1994 미국월드컵 준결승에 올랐던 팀이었다. 결과에 대한 충격이 클 수밖에 없었다.
2006년 독일월드컵 때는 이탈리아, 가나, 체코, 미국이 E조에 편성됐다. 모든 경기가 빅매치였을 정도로 경쟁이 치열했다. 이탈리아는 영원한 우승후보였고, 미국은 전대회였던 한일월드컵 8강팀, 체코는 유로 2004 4강팀, 가나는 아프리카 신흥 강호였다. 결국 이때 살아남은 팀은 이탈리아, 가나였다. 또다른 조였던 아르헨티나, 네덜란드, 세르비아, 코트디부아르가 속한 C조 역시 '죽음의 조'로 꼽혔다. 이때 살아남은 팀은 아르헨티나, 네덜란드였다.
지난 2010년 남아공월드컵 때는 브라질, 포르투갈, 코트디부아르, 북한이 한조에 속했다. 상대적으로 전력이 처지지만 국제 무대의 베일에 가려져있던 북한의 전력도 무시못할 때였다. 당연히 브라질, 포르투갈, 코트디부아르의 전력은 어느 팀이 올라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팽팽했다. 결국 살아남은 팀은 브라질, 포르투갈이었다. 북한은 포르투갈에 0-8로 대패하는 수모도 겪으며 '죽음의 조' 최악의 결과를 냈다.
역대 월드컵에서 '죽음의 조' 단골 손님은 아르헨티나였다. 아르헨티나는 '죽음의 조'에 자주 꼽혀왔지만 2002년 한·일월드컵 때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살아남았다.
김지한 기자 hanski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