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C서울의 아르헨티나계 일본인 선수 세르히오 에스쿠데로. / 스포츠서울 DB
[스포츠서울닷컴ㅣ요시자키 칼럼니스트] FC서울에서 뛰는 세르히오 에스쿠데로(25). 과연 그는 누구일까.
지난달 26일 서울과 광저우 헝다(중국)의 2013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결승 1차전에서 선제골을 터뜨린 에스쿠데로는 아르헨티나계 일본인 선수다. 24일 서울과 부산의 K리그 클래식 38라운드가 열린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그를 만났다. 올 시즌 서울에서 주목할 만한 활약에도 "한국 언론과 오랜 시간 얘기를 나눈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고 말한 에스쿠데로. 글쓴이가 한국인 기자는 아니지만, 스포츠서울닷컴에 에스쿠데로의 이야기를 전하는 건 의미있는 것 같다.
'코리안 드림'을 열고 있는 에스쿠데로는 일본에서도 높은 관심을 지닐 만한 존재다. 아르헨티나계 얼굴에도 유창한 일본어를 구사하는 모습이 놀랍기도 하다. 그는 "프로 생활을 하면서 리그와 FA컵, 챔피언스리그 등 한 시즌 내내 모든 대회에서 주전으로 뛴 경험은 사실상 처음이다. 한국은 내게 성장기회를 줬다. J리그를 나오기 위해 한국에 온 건 아니다. 한국에서 좋은 모습을 보인 뒤 일본 국가대표 발탁과 유럽 진출을 원한다. 미래를 그리면서 도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1988년 9월 1일생. 에스쿠데로는 독특한 이력으로도 관심이 간다. 아르헨티나 부모 아래 스페인 그라나다에서 자란 그는 스페인-아르헨티나 이중국적자였다. 그런데 삼촌 오스바드로와 아버지 세르히오가 1992년 J리그 우라와 레즈에서 선수생활을 했다. 에스쿠데로는 3세 때부터 5년간 일본에서 살았다. 할아버지가 뇌경색으로 고생하면서 아르헨티나로 돌아갔으나 12세 때 다시 일본에 왔다. 아버지는 선수은퇴 후에도 일본에서 지도자 생활을 원해 국제지도자자격증을 취득했다. 2001년 가시와 레이솔 유소년 팀 코치가 됐다. 에스쿠데로 가족이 일본행을 원한 가장 큰 이유로는 '아르헨티나 경제불안'이 한몫을 했다.
하지만 에스쿠데로에게 일본행은 쉽지 않았다. 이미 아르헨티나에서 남미클럽선수권대회 우승 경력이 있는 벨레스 사르스필드 유소년 팀에서 유망주로 주목받았다. 15세 이하 아르헨티나 국가대표로도 거론됐다. 애초 일본 생활 적응도 어려워 아버지를 원망하기도 했단다. 그러나 가시와 유소년 팀에 입단한 그는 아버지가 선수로 뛴 우라와 레즈 유소년 팀으로 옮긴 뒤 승승장구했다. 2004년 우라와 18세 이하 팀으로 올라섰다. 이듬해 2005년 5월 21일 나비스코 컵에 출전해 16세 8개월 21일로 J리그 최연소 출장 2위를 기록했다. 2007년 6월 일본 귀화에 성공하면서 2008년 5월 23세 이하 올림픽 국가대표에도 발탁됐다.
귀화 당시 미성년자였던 에스쿠데로가 일본 국적을 취득하려면 부모 또한 일본국적이어야 했다. 사이타마현 한 고등학교팀 감독직을 맡은 아버지는 동시에 일본국적으로 바꿨다. 귀화시험에는 일본어 글쓰기가 있었는데, 에스쿠데로와 아버지 모두 열정적으로 공부했다고 한다.
그런데 에스쿠데로의 귀화 후 행보는 더뎠다. 2009년 우리와에서 30경기를 뛴 뒤 성장 속도가 떨어졌다. 이어진 부상이 원인이었다. "한, 두 경기 주전으로 뛰다가 (부상으로) 벤치로 밀려났다. 상황이 반복됐다. 경기에 나설 때마다 내 기량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에 조급해지더라." 2011년 후반기에 주전 자리를 되찾는 듯했다. 그러나 또 부상으로 전열에서 이탈했다. 2012년 한 경기 출전에 그치자 이적설이 불거졌다. "우라와를 나오게 되면서 J리그 타 구단으로부터 제의를 받았다. 그러나 내 선택은 서울이었다. 최용수 감독의 영향이 컸다. 그는 '무조건 서울로 와 뛰어줄 것'을 원했다. 최 감독의 열정이 한국을 택한 이유였다."
20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K리그 클래식 스플릿A(상위그룹)서울과 전북 현대의 경기에서 에스쿠데로(왼쪽)가 전북 박세직의 드리블을 태클로 저지하고 있다.
일본 팬은 "에스쿠데로는 완전히 끝났다"고 말했다. J리그에서 밀린 선수로 취급했다. 절치부심으로 한국행을 선택한 에스쿠데로에겐 간절한 도전이었다. "한국행에 대해 긍정, 부정적인 생각조차 없었다. 실제 와보니 낯선 문화는 아니었다. 다만 한국은 열정적으로 뛰는 축구다. 용병에 대한 기대도 높다. 운동장에서 모든 것을 보여줘야 하는 인식이 강했다. 아디와 몰리나, 데얀 등 외국인 선수의 생각도 같더라. '못하면 끝'이라는 생각으로 뛴다. 데얀과 몰리나가 수비에도 적극적으로 가담하는 원동력이다. 나 또한 그들을 보면서 성장한 것 같다."
말 그대로 열정적으로 뛰는 '한국 축구 스타일'이 자극제가 됐다고 한다. 지나온 시간을 돌이켜봤을 때 스스로 프로생활을 너무 쉽게 생각했다고 반성한 에스쿠데로다. "우라와는 환경 면에서 아시아 최고 수준이다. 그러나 주전 경쟁에서 밀려도 '다른 구단으로 가면 되겠지? J2리그로 가면 주전 자리는 보장되겠지'라는 생각을 했다. 서울은 이 같은 사고방식을 버리게 했다."
서울이 부산을 3-2로 누른 이날 글쓴이는 경기 후 칸노 아쯔시 서울 피지컬 코치와 얘기를 나눴다. 그도 에스쿠데로의 성장 배경에 대해 "우라와에서 건너올 때 최 감독의 말에 자극을 받은 것 같다. 최 감독은 '보통수준의 플레이에 만족해선 안 된다. 용병이란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에스쿠데로의 성공이 아시아 특유의 정서를 바탕으로 이뤄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 스승과 제자의 동기부여에서 이뤄진 것이다. 아울러 '용병'이란 선수로 뛰는 경험은 다른 일본인 선수도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다. 아직도 '국외파'하면 유럽리그에서 뛰는 선수 위주로 상상한다. 그러나 전 세계 어느 리그에 가도 용병이 견뎌야 할 무게는 같다. 많은 한국 선수들이 유럽 뿐 아니라 다양한 리그에서 뛰는 건 큰 경험이다. 반면 일본 선수가 중국이나 중동에 진출하는 사례가 드물다. 이 부분은 분명 깨우쳐야 한다.
지난달 26일 광저우 헝다와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결승 1차전에서 선제골을 넣고 환호하는 에스쿠데로(가운데).
에스쿠데로는 "앞으로 내 꿈은 일본 국가대표 발탁과 유럽 진출"이라고 말했다. 한국에 대한 애정도 가득했는데, 그는 "한국의 매운 음식을 처음에는 잘 못 먹었다. 그러나 지금은 김치찌개 등 모든 음식을 즐긴다"고 웃었다.
일본어를 구사하며 웃는 남미계 얼굴 에스쿠데로. 그는 올 시즌 K리그 클래식 우승이 유력해진 울산 현대의 마스다 치카시와 함께 일본 축구의 새로운 길을 만드는 선수임이 틀림없었다. 일본 팬들도 이들의 가치를 느끼기를 바랄 뿐이다.
◆ 요시자키 에이지 소개
1974년생 기타큐슈 출신 축구 전문 프리랜서 기자.
오사카외국어대학교 한국어학과 졸업.
주간 사커매가진 한국소식 코너
담당(11년).
스포츠지 '넘버'에서 칼럼 연재(7년)
최근에는 축구 뿐만 아니라 한국경제 정치, 북한사정등 글
쓰기도 한다. 박지성 "나를 버리다", "홍명보의 미라클" 등을 번역, 일본에 출판했다.